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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오빠부대라는 말을 대중화시킨 대표적인 가수가 조용필 선생님인 사실은 모두 알고 계신가요? 조용필은 국내 탑 클래스 가수만이 도전해볼 수 있는 잠실 주경기장 콘서트를 무려 7번이나 매진시키는 어마어마한 가수인데요. 조용필 노래모음을 들어보며 과거를 추억해보겠습니다.
조용필 일화
조용필 노래모음을 듣기 전 간단하면서도 재미있는 일화들을 몇개 보고 노래를 들어보실까요?
조용필은 국내 콘서트 최대 관객 동원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70년대~90년대, 그리고 10년대까지 차트 1위곡들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시대가 변함에도 뒤쳐지지 않고 수많은 히트곡과 한국 내에서 최대 콘서트 인원 동원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예술의 전당 7년 연속 공연 기록을 가진 가수이기도 한데요. 한마디로 살아있는 전설, 가왕이란 말이 부끄럽지 않은 가수임에 분명합니다.
그리고 조용필은 연말 가요대상을 전관왕 4회 및 4연패 두 번을 포함해서 총 11회를 수상한 기록을 세웠는데요. 이마저도 1987년 더 좋은 음악을 하겠다며 음악 TV프로 수상 거부를 선언하여 11회 밖에 받지 못했다고 하네요.
조용필은 가요 역사상 최고의 가수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가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데요. 지금은 고인이 된 신해철 또한 감히 까불지 못하는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하네요. 故신해철씨는 '무한궤도'로 데뷔한 대학가요제에서 당시 독설가로 유명했던 심사위원 조용필에게 후한 평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조용필은 신해철을 '귀여운 후배'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조용필은 배우 안성기와 중학교 동창이며 절친사이입니다. 양희은은 한 TV 프로그램에서 "조용필에게 기타를 가르쳐 준 사람은 안성기씨입니다."라고 언습하며 먼저 기타를 배운 안성기를 보고서 조용필은 자극을 받아 기타 연습을 더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또한, 조용필과 안성기는 중학교때 짝궁이었다고 합니다. 안성기의 말에 따르면 "조용필의 키는 중학교 때 키 그대로."라고 합니다.
이 둘은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나란히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인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조용필은 데뷔앨범인 1집 '돌아와요 부산항에' 때부터 이미 대한민국의 대스타였는데요. 조용필의 아버지는 한 인터뷰를 통해서 "누가봐도 대한민국에서 내 아들이 돈을 제일 많이 버는데 아직도 본인 명의의 집이 없고 전세를 살고 있다. 매니저나 다른 사람이 돈을 해먹고 있으니 기자양반이 좀 알아봐줘라."라고 기자에게 부탁했는데, 이에 기자가 대답하기를 "누가 중간에서 해먹는 것이 아니라 조용필은 100을 벌었다고 치면 90이상을 음향장비나 악기에 전부 투자하고 해외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1등급 장비를 모두 맞추려고 하니까 돈이 없는 것이다."라고 대답해줬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거기에 그 수많은 음향 장비를 운송하기 위해 트럭을 2대나 사서 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최고의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만족하지 않고 더 발전하기 위해 그 많은 돈을 음악에 재투자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조용필의 노래 중 1996년 '친구여'가 대중가요 최초로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노래 '친구여'는 어릴적에 친구를 추억하는 정서가 닮겨 있어 교육적으로도 큰 의미를 두기 때문에 선정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뿐만 아니라 '돌아와요 부산항에', '여행을 떠나요', '한 오백년'도 교과서에 실리며 가장 많은 노래를 교과서에 싣기도 했습니다.
조용필은 두 번의 아픈 이별을 겪고 1994년 40대 중반의 나이로 미국 교포 출신 사업가인 안진현씨와 세 번째 결혼을 하였습니다. 뒤늦게 만나 이 부부는 자녀 없이 지냈지만 안타깝게도 2003년 아내 안진현씨는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장례식 내내 식음을 전폐하고 장례식을 마친 후에 아내가 없는 집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노래방에 찾아 아내가 좋아했던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서 조용필은 아내를 가슴에 묻었고 아내의 이름 중 한 글자인 '진'을 제목으로 한 노래를 발표하여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1993년 12월 조용필은 무면허 음주운전을 하였습니다. 새벽에 자신의 벤츠 승용차를 중앙분리대에 설치된 지하철 환풍구에 들이받아서 중상을 입는 사고를 냈습니다. 혈중알콜농도가 0.26%로 음주운전에 무면허까지 밝혀져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는데요.
사고 직후에 조용필은 병원에 입원을 했고, 퇴원 후 구속 알콜수치인 0.35%에 미치지 못하여 불구속 입건과 벌금형이 내려졌습니다.
2013년 45주년을 맞이하여 조용필은 19집을 발표했는데, 이게 그 유명한 '바운스'라는 곡입니다. 바운스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대한민국 전체에 큰 히트를 가져왔는데요. 2013년에는 가요계에 엄청난 명곡들이 쏟아졌던 한 해였는데 그 모든 곡들을 제치고 올해의 노래 1위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2위가 싸이의 젠틀맨, 3위가 크레용팝의 빠빠빠, 4위가 엑소의 으르렁이었습니다.
조용필은 이미 연계계에서 알아주는 노력형 천재 가수인데요. 조용필은 "매일 연습하고 밥 먹는 시간 이외에는 기타만 쳤어요. 거기서 소문이 나서 미8군에 들어가게 된거에요."라고 가수로 데뷔하게 된 사연을 전했습니다. 또한 조용필의 중학교 동창인 안성기는 "조용필의 손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쇳독이 올라서 초록색이 됐었습니다. 손가락이 전부 굳은살이 박혀 몇 번 곪고 그랬던 모양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다가 아프면 좀 놀고 하지 않나요. 하여튼 포기하지 않고 굉장히 열심히 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조용필은 결코 타고나기만 한 천재가 아니라 노력형 천재라는 것을 증명해줬습니다.
조용필은 가요계의 왕일 뿐만 아니라 기부계의 통큰 왕이기도 한데요. 조용필은 사별한 부인의 유산인 24억원을 상속받아서 전액을 심장병 어린이를 위해 기부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심장마비로 고인이 된 아내의 영향을 받은 듯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조용필은 공연 수익금의 상당액을 기부하기도 하는데요. 2010년 공연 수익금을 모아서 소아암 어린이 500명에게 기부를 했고 이는 약 20억원 상당이었다고 합니다.
2009년에는 조용필 장학재단을 세워서 매년 3억원씩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돈 뿐만 아니라 재능기부도 활발하게 하고 있는데요. 조용필은 소록도 위문공연을 개최했고, 내년에 또 올것이라고 약속을 한 후 다음 해에 정말로 재공연을 하여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습니다.